<조의현의 화장실 칼럼> 전쟁 속의 배설물과 화장실 에피소드

관리자 │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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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배설물과 화장실 에피소드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아서 전쟁에 패한 페르시아


월등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92년부터 20여 년 동안 계속된 그리스 도시국가와의 전쟁에서 대패를 하게 되었다. 패전의 원인은 화장실 문제였다. 영토의 3분의 1이 사막 지대여서 화장실을 따로 이용하지 않았던 페르시아 군인들이 척박한 바위투성이의 그리스 지역에서도 아무데서나 배설을 했기 때문이다. 배설물이 바위 위에 장기간 쌓이면서 악취와 해충으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페르시아 군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상당수 병력을 잃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용 간이화장실을 사용한 프로이센 19세기 후반에 벌어진 프랑스와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의 전쟁에서 프로이센군은 군대용 간이 화장실을 사용했다. 길이는 10미터로 하고, 깊이와 폭이 각각 70센티미터가 되게 구멍을 판 뒤 그 위에 널빤지와 관목을 놓아 화장실로 활용하고, 여름철엔 악취를 막기 위해 2-3일에 한 번씩 구덩이를 메웠다. 전쟁 과정에서 포병대가 이 간이화장실을 명중시키면 내용물이 솟구치면서 티푸스나 이질, 황달 같은 질병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특히 황달은 불결한 화장실 환경 때문에 군대에서 많이 발생해 '군인들의 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미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위생 문제를 법으로 정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똥을 활용한 방어법


분뇨는 전쟁에서 무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14세기에 스위스 베른과 프랑스 스트라스브르의 주민들은 적의 요새를 향해 새총으로 분뇨를 쏘아 악취를 풍기는 방법으로 점령군이 사기를 잃고 항복하게 만들었다. 똥이 적을 무력하게 만드는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한편 중세 유럽이나 봉건 시대의 일본에서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성 주위를 해자로 둘러싸는 방법이 유행했는데, 이 해자가 분뇨 처리장으로 바뀌면서 수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설물로 가득 찬 해자가 지독한 악취를 발생시켜 때로는 국가 방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배설물의 역할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배설물은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했다. 소변을 증류시켜 얻은 질소를 이용해 화약을 제조했던 남부에서는 배설물을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 여성들도 요강을 마차에 비움으로써 전쟁에 기여했다. 반면 북부에서는 부대 안에 질병이 퍼지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 위생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일 화장실을 청소하고 야영지에서는 화장실을 야영지 끝에 설치했으며, 화장실 구멍 주변을 수풀로 덮어 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배설물 처리 방법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에도 군부대의 위생과 보건은 심각한 문제였다. 공식적인 부대 업무편람에 따르면 배설물은 불태우거나 파묻거나 기선으로 운반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시냇가를 야영지로 택하고 화장실을 시냇물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야영지가 결정되면 위생부대가 먼저 도착해 주방의 위치를 정하고 반대편 끝에 전체 부대 인원의 5-8퍼센트 정도가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구멍을 팠다. 행군을 하는 중이나 임시 야영지에서는 얕은 참호를 파서 화장실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후 참호는 양동이로 대체되어 양동이가 배설물로 다 차면 전선 뒤쪽으로 보내고 뒤쪽 부대에서는 새 양동이를 앞으로 보냈다.

복부에 총탄을 맞았을 때 배설물이 들어 있으면 부상병을 처리하는데 애를 먹기 때문에 지원병 부대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는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병사들은 항문을다치기 쉬우니 반드시 화장실용 화장지만을 사용하고, 배설 후 자신의 배설물을 꼼꼼하게 관찰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똥싸러 간 병사' 때문에 시작된 중일전쟁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은 화장실과 관련된 작은 실랑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베이징 남쪽에 마르코 폴로가 다녀갔다고 해서 'The Marco poloBridge'라고도 불리는 노구교(構)가 있는데, 이 다리 부근에서일본군 부대가 야간 훈련을 하던 중에 중국군이 주둔한 방향에서몇 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일본군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전투에 돌입하기 위해 병사들을 자기 위치로 복귀시켰는데 신병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 신병이 중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고 판단한일본군 사령관은 행방불명이 된 병사를 찾기 위해 중국군 주둔지에 일본군이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중국군이 거부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와중에 문제의 신병이 나타났다. 볼일이 급해서변을 보고 오느라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빌미를찾고 있던 일본군 사령관이 중국군 주둔지에 들어갈 것을 계속 요구하면서 결국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군은 장기간주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 점령지에서 온갖 전염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전에

서는 점령지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화장실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에서는 심리전이 강화되어 일상생활의 모든 구호들이 전쟁과 연관되어 만들어지고 선전 활동은 일종의 예술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변기도 전쟁 수행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합군지역에서는 히틀러의 사진이 새겨진 요강이 발견되기도 했다. 다른 민족에 비해 독일인은 소변의 양이 많고 비 요산이 많다는 이유에서 소변을 분석해 독일의 스파이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대변 냄새로 적을 소탕한 사례도 있다. 전쟁 중에 미군은 조그만 섬 카타르카를 점령하는데 무려 1년 5개월을 소요했는데, 일본군이 밀림 깊숙이 숨었다가 미군 캠프를 습격하고 도망가는 게릴라 전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군은 밀림에서 혼자 볼일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인분 냄새를 찾아 게릴라를 소탕하는 작전이 세워졌고, 이 작전이 효과를 나타내 많은 일본군을 소탕할 수 있었다. 전쟁 중에도 화장실과 관련된 추적이 유효하게 사용된 경우라 하겠다. 이 경험은 이후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전쟁에도 영향을 미쳐서, 미군은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한 분뇨 탐지기를 개발해 정글에서 벌어진 전투에 활용하기도 했다.


가장 괴로운 화장실 체험은 독일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이루어졌다. 이 수용소에는 커다란 구덩이에 통나무만 걸친 화장실이 100-300명당 6개만 제공되었다. 사생활은 물론 자유로운 배설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 내에 모든 인원이 배변을 마쳐야 하는 최악의 화장실이었다.


현대 전쟁에서도 화장실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은 20세기 초에 비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발생하는 전쟁에서도 위생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배설물이 파리를 꼬이게 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설사가 가장 큰 적이 되는 셈이다.


육군의 경우 여전히 참호 변소, 깊은 구멍, 태우는 변소, 굴 변소, 양동이 변소 등이 활용되지만 결국에는 배설물을 땅에 파묻는 방법을 사용한다. 해군의 배설물은 바다에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

고 배가 정박하는 중에는 배설물 탱크에 오물을 담아두었다가 공해상에서 투기한다. 1970년대에는 해군에도 여군이 등장하면서 미국의 항공모함 '존 F 케네디'호에는 남녀화장실을 따로 설치했는데, 남성용은 회색으로 여성용은 분홍색으로 칠해 구분했다.


한편 공군 조종사들의 비행 중 배변을 위해 조종사용 소변 튜브를 조종석 밑에 설치했지만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여성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비행 중에 튜브를 사용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어서 일반적으로 참았다가 착륙 후에 볼일을 본다.


전쟁 때문에 탄생한 설사약 '정로환'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으로 널리 알려진 정로환(正丸)은 일본이 러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만들었다. '正'은 '정복한다'는 뜻을 가진 의성어이고, '露'는 러시아의 한자표시이며 '丸'은 구슬 약을 의미한다. 물과 공기와 풍토가 다른 외국에서 전쟁을 하다보면 당연히 배탈이 나고 설사약이 필요해진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기만큼 중요한 것이 군인들의 건강 문제라고 판단한 일본은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상비약품으로 정로환을 지급했고, 결국 전 세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전쟁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와 전투하다 죽은 사람의 숫자가 반전된 것도 이 전쟁 때가 처음이다.


화장실에서 시작되는 '유언비어'


보병과 포병이 중심이던 과거 전쟁터에서 화장실은 사방이 뚫린 공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공중화장실의 고전적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전장에서 기분 좋게 용변을 보는 일은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확실한 승리를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바로 그 자리(화장실)에서 부담 없이 떠들어댄 수다들이 순식간에 부대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언비어'라는 단어가 '화장실에서 하는 말(Latrine Parole)'에서 유래되었다.


똥으로 만든 파이


11세기부터 20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유럽의 십자군원정 때 전쟁에 나가는 남편들은 정조대를 만들어 아내에게 건넸다. 어느 날 한 마을에서 건달기가 있는 수도사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고해성사를 하는 한 여인을 범하려고 시도했는데, 여인은 나중에 은밀하게 만나자고 설득해 위험을 모면했다. 이후 여인은 자신의 똥으로 만든 파이를 수도사에게 보냈는데, 여인의 정성에 황홀해진 수도사가 파이를 주교에게 선물로 건넸다가 사실이 밝혀져 교회에서 추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충직한 신하의 화장실 잠입 이야기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으로날이 새고 전쟁하다 날이 지는 시기였다. 어느 날 조나라의 군주 양자가 정적인 지백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해 지백을 죽인 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요강으로 사용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백의 충신 예양이 보복을 위해 양자의 성으로 잠입하는데, 예양이 선택한 장소가 화장실이었다. 예양은 화장실에서 양자를 기다리다 잡혔는데 예양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 양자가 예양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예양은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다.


화장실 때문에 자살한 스탈린의 아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스탈린의 아들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에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자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철조망에 몸을 던져 쇼크사 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글쓴이 조의현, 이담북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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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어울리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나뿐인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신유건영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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